박민규, [카스테라] 밑줄긋기


카스테라

p32
 죽은 인간들의 영혼은 어디로 가는 걸까.
 아마도 우주로 올라가겠지. 무엇보다 영혼은
 성층권이라는 이름의 냉장고에서 신선하게 보존되는 것이니까.
 그러다 때가 되면 다시금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거야.
 어쨌거나 그런 이유로
 다음 세기에는 이 세계를 찾아온 모든 인간들을
 따뜻하게 대해줘야지, 라고 나는 생각했다.
 추웠을 테니까.
 많이 추웠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p74
승객 여러분들은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주셔야 겠지만, 그게 될 리가 없는 것이다. 승객들은 모두 전철을 타야 하고, 전철엔 이미 탈 자리가 없다. 타지 않으면, 늦는다.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

 처음 열차가 들어오던 그 순간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열차라기 보다는, 공포스러울 정도의 거대한 동물이 파아, 하아, 플랫폼에 기어와 마치 구토물을 쏟아내듯 옆구리를 찢고 사람들을 토해냈다. 아아, 절로 신음이 새어나왔다. 뭔가 댐 같은 것이 무너지는 광경이었고, 눈과 귀와 코를 통해 머리 속 가득 구토물이 차오르는 느낌이었다. 

p76
 어쩌면 피라미드의 건설 미결도 <억울함>이었는지 모른다. 지금 관두면 너무 억울해. 아마도 노예들의 산수란, 보다 그런 것이었겠지.

p80
 결국 모든 인간은 상습범이 아닐까, 나는 생각했다. 상습적으로 전철을 타고, 상습적으로 일을 하고, 상습적으로 밥을 먹고, 상습적으로 돈을 벌고, 상습적으로 놀고, 상습적으로 남을 괴롭히고,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상습적으로 착각을 하고, 상습적으로 사람을 만나고, 상습적으로 대화를 나누고, 상습적을 회의를 열고, 상습적인 교육을 받고, 상습적으로 머리 어때 무릎 발 무릎 발이 아프고, 상습적으로 외롭고, 상습적으로 섹스를 하고, 상습적으로 잠을 잔다. 그리고 상습적으로 죽는다.

p84
 세상은 하나의 열차다. 한 량의 정원은 180명, 그러나 실은 400명이 타야만 한다

 아버지의 눈동자가 그토록 잿빛이었단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다. 뭐랄까, 전지가 떨어진 계산기의 꺼진 액정과 같은, 그런 잿빛이었다.

p85
 새로 전지를 갈아끼운 계산기의 액정에서, 새롭고 소소한 액수의 숫자들이 깜박깜박 빠르게 점멸하는 나날이었다. 그런 느낌이었다. 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 그런 잿빛의 눈동자를 나는 보았다. 아버지와 색이 같은 두 개의 동심원, 나는 결국 아버지의 연산(演算)이었다. 3.1415926535897...


몰라 몰라, 개복치라니
p102
지구의 나이는 45억 년이다. 인류의 나이는 300만 년이고, 나는 스무 살이다. 누가 뭐래도 세대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이에 비한다면 자본주의의 나이는 고작 400년에 불과하다. 나는 아무래도 그 쪽이 편했다. 말과 눈치가 통하고, 우선 먹고 마시고, 입는 게 비슷했다. 즉 그런 이유로, 나는 지구와 인류보다는 자본주의와 함께 살아왔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함께 늙어간다. 당신이라면, 아마도 내 말을 이해할 것이다.

p117
 개복치는 한 번에 3억 개 정도의 알을 낳습니다. 그중 성어(成漁)가 되는 것은 한두 마리에 불과하죠. 인류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코리언 스텐더즈
p184
 은근히, 세상이 변하기보다는 직급이 변하길 바라는 사람이, 되어갔다.

p194
 인간은 서로에게, 누구나 외계인이다.

p207
 인간이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무력하기 때문이었다.


대왕오징어의 기습
p220
 아는 것을 힘이라고 생각하는 동물은 이 넓은 지구에서 오직 인간 뿐이다. 인간은, 실은 그래서 왜소하다.


헤드락
p250
 머나먼 오클라호마의 호두나무 아래에서, 그 순간 나는 한 사람의 인간이 아니라 한 마리의 생물(生物)이었다. 인간이란, 생존의 문제를 해결한 생물만이 비로소 얻게 되는 이름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p265
 자카르타의 태양이, 우리가 앉은 노천의 테이블까지 출렁 하고 번지점프를 해왔다.


갑을고시원 체류기
p276
 도서관의 양지바른 테이블 위에서 나는 한 마리의 달팽이처럼 느리고 끈적하게 생활정보지의 곳곳을 기어다녔다.

p285
 결국 나는 소리가 나지 않는 인간이 되었다. 어느 순간인가 저절로 그런 능력이 몸에 배게 된 것이다. 발뒤꿈치를 들고 걷는 게 생활화되었고, 코를 푸는 게 아니라 눌러서 조용히 짜는 습관이 생겼으며, 가스를 배출할 땐 옆으로 돌아누운 다음- 손으로 둔부의 한쪽을 힘껏 잡아 당겨, 거의 소리를 내지 않는 기술을 터득하게 되었다.

p286-7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사실과, 이 세상은 혼자만 사는 게 아니란 사실을- 동시에,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모순 같은 말이지만 지금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즉, 어쩌면 인간은 - 혼자서 세상을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혼자인 게 아닐까.

p299
 누구에게나 인생은 하나의 고시(考試)와 같은 것이 아닐까.


[맨 프롬 어스]; I want to believe 보고쓰기


    멀더 사무실에 붙어있는 포스터. 한 때 내 책받침이자 책갈피이자 교과서 겉표지를 장식했던 그 포스터. "I want to believe"
왜 멀더가 믿고 싶어졌는지는 어렸을 적 멀더가 여동생의 외계인 납치를 겪으면서 생긴 트라우마 이야기까지 해야하니 그건 일단 제껴두자. 어쨌든 이따금씩 믿기 어려운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때면 난 저 포스터와 멀더를 떠올린다. 


    [지붕뚫고 하이킥]을 보면서 저 포스터를 다시 떠올렸다. 정보석이 운전을 하고 가다 자신이 미래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남자를 만나는 에피소드였는데 정보석은 그의 말을 믿게 된다. 그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정보석의 대사가 상당히 인상적이다. 그 대사를 보면 소싯적 멀더가 떠오른다.
" 세상에는 믿고 싶어서 믿는게 아니라 믿을 수 밖에 없어서 믿는 것들이 있다." 이보다 멀더스러울수가.



    그리고 나서 엊그제 [맨 프롬 어스]를 보고나서 난 다시 멀더와 "I want to believe"포스터를 떠올렸다. 만사천년!을 살았다는 존 올드맨. 그는 부처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그것을 서구에 전파했는데 그 후 어쩌다보니 신격화되는 바람에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었다고 황당무개한 이야기를 진지하면서도 논리정연하게 이야기 하는데 난 그만 그의 말들을 다 믿어버리고 말았다. 영화가 끝난 지금까지도 이 세상 어디엔가 존 올드맨 같은 불사의 존재가 적어도 한 명쯤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품으면서 말이다. 

    그러고보면 인간에게는 식욕, 성욕, 수면욕과 함께 기본적으로 '믿고 싶어하는 욕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증거를 제시하며 약간의 증명만 해주면 그것이 아무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인간은 의외로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이 욕구가 없다면 사기꾼, 종교, 정치인, 사랑, 영화, 드라마의 존재를 설명할 길이 없지 않은가!     
    아, 물론 거짓말에 속고 그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 위한 각자 고유의 방어막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이 방어막은 유리로 되어있어서 한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 깨지는 게 한 순간이다. 방어막이 일단 깨지면 사람들은 깨진 방어막 사이로 새어들어오는 믿을 수 없는 그 이야기에 빨려들어가게 된다. 일단 한번 믿기 시작하면 믿기 시작한 자신에 대한 자기합리화가 시작되기 때문에 더욱 걷잡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맨 프롬 어스] 영화 안의 사람들이, 영화 밖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맨 프롬 어스]는 사람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믿고 싶어하는 욕구'를 정교하게 잘 활용하고 있는 영화다. 한시간 삼십분 러닝타임 내내 배경 한번 안바뀌고 등장인물은 대화만 나누는 이 영화가 우리에게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를 선사할 수 있는 것은 그 욕구를 교묘하게 자극했기 때문이 아닐까.

 "I Want to Believe" 
 요즘의 나는 멀더가 된 것 마냥 불사의 존재가 있다고 믿고 싶고, 저 멀리 우주 어딘가 외계의 생명체가 있다고 믿고 싶고, 사람이 죽고나면 영혼이 되거나 환생할 수 있다고 믿고 싶고, 운명이라는 것이 가끔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바른 길로 이끌기도 한다는 것도 믿고 싶다. 무엇보다 난 인간은 무엇이든 믿고 싶어하기에 그 어떤 것도 이룰 수 있었다고 믿고 싶다.

    
    

    

김훈, [바다의 기별]; 산 사람은 또 그저 살아간다 읽고쓰기

인간은 보편적 죽음 속에서, 그 보편성과는 사소한 관련도 없이 혼자서 죽는 것이다.모든 죽음은 끝끝내 개별적이다. 다들 죽지만 다들 혼자서 저 자신의 죽음을 죽어야하는 것이다. 죽음은 언어화되지 않고 공유되지 않는다. 장모의 초상을 치르면서 나는 그 절대적인 개별성에 경악했다.

 

- 김훈의 [바다의 기별] 中 '생명의 개별성'

 

    외할머니를 화장하던 때가 갑자기 생각났다. 병원 주차장에서 외할머니의 관을 장의차에 실으며 엄마도 나도 외할아버지도 '울고 있다'는 의식조차 없이 엉엉 울어댔었다. 외할아버지는 주저앉고 일어서시지 못했고 엄마와 이모는 발을 구르며 우셨다.

    속이 깊은 오븐같이 생긴 소각로에 할머니의 관이 들어가는 순간 유리 너머는 스님의 염불소리와 우리들의 울부짖음이 뒤엉켜 흐르고 있었다. 그게 다 무슨 소용이었을까. 외할머니는 그저 재가 될 일만 남아있는 거대한 살코기 덩어리에 불과했을텐데 어차피 우리의 울부짖음 따위를 듣고 이해할 수 없었을텐데 우리는 우리들 슬픔에 못이겨 울부짖었다. 돌아오라고 가지 말라고

     외할머니의 관이 소각로에 완전히 들어가고 소각로의 문이 닫히자 '소각 중'이라는 빨간 불이 들어왔다. 1시간 가까이 걸린다고 했다. 스님은 염불을 끝내셨고 우리는 우리를 싣고 왔던 버스로 돌아가 준비해온 도시락을 외할머니를 완전히 태우는 그 한 시간동안 말없이 먹었다. 도시락을 안먹는 사람은 없었다. 가지말라고 돌아오라고 울부짖던 그 입에 각종 반찬과 쌀밥과 물을 넣으며 우리는 외할머니가 재가 되는 그 긴 한시간을 채웠다.

    소각이 끝나고 우리 눈 앞에는 작은 뼛조각들과 재만이 남아있었다. 우리는 다시 울부짖었다. 점심 먹는 동안 마치 일시정지 버튼을 눌러놓았다가 누군가 다시 재생버튼을 누른 것처럼 우리의 울부짖음은  점심시간 이전과 달라진 것 없이 똑같았다.

    간신히 의사표현을 하시던 한 쪽으로 일그러진 입꼬리는 우리들만 보시면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던 그 두 눈은 주름이 자글자글하게새겨있던 그 두 손의 온기는 집을 가득 채웠던 외할머니만의 그 체취는 이제 정말로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새하얀 재만이 소각로의 스테인레스 위에 흩뿌려져 있었다.

    화장터의 직원은 하얀 장갑을 끼고 경건한 손길로 재를 쓸어담아 준비해두었던 도자기 안에 넣었다. 도자기는 그 크기와 생김새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도자기에는 외할머니가 가졌던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온기도 체취도 손길도 목소리도. 그 안에 담긴 재도 사실상 아무 의미 없는 것이었다. 돈을 주고 구입한 도자기에 외할머니를 태우고 남은 재를 조심스레 경건하게 엄숙하게 담았다. 그 광경을 보며 우리는 꾸역꾸역 밥을 집어넣던, 외할아버지의 거취를 의논하던 그 입으로 다시 울음소리를 냈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집에 가면서 몇몇은 곯아 떨어졌고 몇몇은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었다. 나는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늘진도나간거노트좀빌려줘" 사람마다 저마다의 우주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면 그 우주는 언젠가 소멸한다. 하지만 놀라우리만치 그 소멸이 다른 우주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 어떤 우주의 소멸이 또다른 우주의 소멸을 뜻하지는 않는다.

    삶도 죽음도 과연 개별적이다. '죽는다는' 그 사실 하나만 보편적이다. 우리는 모두 죽지만 산 사람은 또 그저 살아간다.


3월 한 달 내가 만난 영화들; [그린존], [셔터아일랜드], [예언자], [줄리앤줄리아] 보고쓰기



 3월 한 달간 내가 만났던 영화들
 



[그린존]

    사실 난 이 영화가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보러 갔다. 본 시리즈의 제작진과 멧 데이먼이 만난 전쟁액션영화라는 사실만 듣고는 그냥 전형적인 헐리우드 전쟁영화이려니 멧 데이먼이 전쟁영웅이려니 별 기대 없었다. 그리고 뚜껑을 열어보니 역시나 내 취향의 영화는 분명히 아니었다. 
    어두침침한 배경에 대사없이 총소리만 나면 졸립고 집중이 힘들어지는 두뇌구조를 가진 나에게 영화 후반부는 주인공의 위치파악도 힘든 내용파악도 안되는 고된 시간이었다. 여자들이 달콤달달한 로맨틱코미디 대사에 손발을 오그리면서도 설레는 것과 비슷하게 남자들도 우두두두 총소리와 퍽퍽 주먹소리에 자신이 전쟁영웅이 된 듯 좋아하는 거겠지 하는 생각과 왜 정치인들은 아랍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저렇게 능글맞게 생겼을까하는 생각과 나라면 진상규명이고 뭐고 저렇게 위험한 짓은 안할텐데...하는 생각이 영화 후반부를 지배했던 나의 감상이었다.
    하지만 나의 집중도와 영화 취향을 떠나서 [그린존]은 사실 굉장히 영리한 영화였다. 이라크 전쟁에 대한 확실한 메시지에 스릴과 액션을 당의정으로 입힌 영화. 이토록 잘만들어진 액션씬과 총격씬을 상업적인 눈요기로만 허비하지 않았다는 게 대단했다. 
    어렸을 적 보아왔던 헐리우드의 전쟁영화들을 떠올리며 헐리우드판 전쟁영화도 많이 달라졌구나. 하면서 마음이 훈훈해지기도 했다. 영화에 교묘히 미국우월주의를 깔아놓고 관객을 속이기에는 이제 관객들도 많이 똑똑해졌나보다. 아니면, 그게 사실이 아니란 걸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버렸든지. 뭐 이런 생각도 잠깐. 
 또 하나 더. 미국도 정권이 바뀌었으니 이런 영화가 가능한건가? 하는 참, 대한민국 국민스러운 생각도! (왠지 씁쓸하군.)
어쨌든 남자들에겐 추천이요(추천안해도 대부분 보고 싶어 할테지만) 여자분들은 취향에 따라 보길 권장하는 영화.





[셔터아일랜드](스포있음)

옛날옛적 어언 5년전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명명해놓은 영화의 장르가 하나 있다.
"미친놈반전영화!" 처음엔 주인공의 시선에서 긴장감 넘치게 사건을 진행시키다가 마지막 쯤 가서 '몰랐지? 사실은 이게 다 니들이 믿고 있던 주인공 짓이란다. 주인공이 미친 사람이었거든'하는 반전을 가진 영화. 이런 반전영화는 상당히 많은데 예전에 조니뎁 믿고 봤다가 실망했던 [시크릿 윈도우]도 여기에 포함되는 대표적인 영화이고, 넓게는 [장화홍련]이나 [디아워스]도 이 장르라고 할 수 있다.
    마틴스콜세지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조합, 게다가 범죄를 저지른 정신병자들이 모여사는 섬의 충격적 진실이라니. 이 영화에 대한 나의 기대는 말로 다할 수 없을 정도였다. 물론 무서운 장면이 많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은 좀 있었지만 그래도 꼭 영화관에서 보고말겠노라 다짐했었다.     
    그런 기대감 한켠에 약간의 불안감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영화도 혹시 '미친놈반전영화'이면 어떡하나..하는 거였다. 설마 원작도 있고 그 원작도 대단한 작품이고, 이런 영화에 그런 뻔한 반전이 숨어있을리가! 하면서 봤는데 설마가 역시나였다. 물론 디테일은 대체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 많았다. 아이가 있었다는 부분이나 레이첼이 딸 이름이라거나 레이첼이 한 짓이 아내가 한 짓이었다거나 등등 이런 세부사항들은 예상치 못했지만 그럼에도 영화가 끝나고 솔직히 허탈했다. 반전을 뒤집는 한번 더의 반전이 있길 기대했건만. 
    그래도 영화의 전개에서 느껴지는 긴박함이나 섬의 그 으스스한 분위기를 잘 살려낸 것은 칭찬할 만했다.(감히 마틴 스콜세지에게 칭찬을 하고 있는 나!) 하지만 영상과 전개와는 다르게 영화의 사운드가 좀 촌스럽고 투박하게 느껴졌는데 감독이 그 시대적 배경을 살리기 위해 일부러 복고적인 느낌으로 한 것이었을까 의문이 들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중간중간 겁을 주려는 의도가 너무 훤히 보이는 사운드가 조금 유치하게 느껴졌다. 솔직히 초반에 섬에 입성할 때 음악은 소리가 너무 커서 그들이 무슨 어드벤처에 입장하는 느낌이었다. 음, 괜한 트집이려나...
    여튼 결론은 역시 사람이 너무 기대를 하고 보면 안된다는 것. 원작을 한번 읽어봐야겠다. 





[예언자]

    화이트데이 데이트용 영화로는 최악의 선택이었다. 난 뭘 믿고 대체 이 영화에 그토록 부푼 기대감을 가졌던가. 
    일단 안면인식장애가 있는 내게는 등장인물들의 얼굴이 죄다 그 얼굴이 그 얼굴로 보였다. 대체 아까 죽은 걔가 왜 아직 살아있는건지 쟤는 주인공의 친구인지 아니면 아까 주인공을 괴롭히던 그 아이인지 도통 구분이 안갔다. 게다가 러닝타임은 길고 길어 후반부로 가서는 주인공에게 미션이 하나 더 있다는 얘기에 '아, 제발 저게 저 아이의 마지막 미션이길'하고 간절히 바라기도 했다. 
    칸에서 수상도 하고 엄청난 호평도 받았다고 익히 들었지만 난 아직 이 영화를 받아들일 경지에 이르지 못했나보다. '대부'에 비교하기에는 주인공에게 주어진 미션들이 처음의 미션을 제외하고는 그닥 어려워보이지 않는데다 성장담이라고는 하지만 성장의 과정이 너무 지루하게 나열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그래, 사실 이게 다 부덕한 나의 안목 때문이다. 하지만, 내 눈으로 보기에 임금님은 지금 벌거벗었는데 어떡하나..하고 싶은 말은 해야지.. "여러분 영화 재미없어요! 지루해요!"
    칸영화제 심사위원단에 버금가는 안목을 지니신 분이나 아랍권 사람들 얼굴을 잘 구분할 자신있는 분들 아니면 별로 영화보기를 권하고 싶지 않다.





[줄리앤줄리아]

 요리, 여자, 사랑. 어쩌면 영화의 소재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첫째, 프랑스요리 먹어보고 싶다. 특히 그 오리 다리 묶는 거랑 랍스타!
       (그런데 프랑스요리를 먹기에 내 지갑은 너무 비루하다)
둘째, 역시 인생 살면서 좋은 남편을 만나는 건 참 중요하다.
        나를 있는 그대로 평생 아낌없이 사랑해줄 그런 사람과 결혼해야지.
셋째, 블로그로 인생을 바꾸기엔 이제 블로그가 너무 흔해졌다.
        게다가 줄리...퇴근하고 프랑스요리할 시간이 있다니!
        야근도 주말출근도 없는 줄리 만세~

    방금 식탁에 올라온 따뜻하고 향긋한 요리 한 접시같은 이 영화를 보며 이리도 시니컬해지다니 나도 속세에 많이 찌들었나보다. 그래도 가끔 사는 게 외롭고 지칠 때 이런 사랑스럽기 그지 없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도 원기회복이 될 듯 하다. "진짜 원기회복제는 영화관에 있습니다."(응?)
오늘도 내일도 매일매일 본아뻬띠! 





 

[회오리바람], 난 너무 늙어버렸다 보고쓰기


 

 가끔 중학생 시절 내 일기를 읽으면
뭐가 그리 세상에 불만이 많은지 거침이 없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라고 손이 가는 대로 마음이 말하는 대로 끄적여놓은 그 일기장을 볼 때면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일들에 왜 그리 분노하고 불평하고 억울해했었는지 설익은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회오리바람>은 바로 그 느낌이었다. 중학교 때 혹은 고등학교 때 썼던 내 일기장을 다시 읽는 느낌. 주인공들이 겪을 그 숨막히는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면서도 동시에 '지나 보면 별거 아니란다' 피식- 늙은이 흉내내며 웃게 되는 그런 느낌. 

 중고등학교 때 난 모범생이었다. 대학욕심도 있었고, 엄마 아빠를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장녀로서의 비장함도 있었다. 이유없는 반항을 일삼는 아이들을 싫어했고, 껄렁껄렁 거리는 아이들과는 그닥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 수련회 가서 몰래 숨겨온 술 마시는 정도가 반항의 전부였을 뿐 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마음 속에 들끓던 그 열망들이 기억난다. 나도 영화 속 이 아이들 마음 속의 그 끓어오르던 그것이 분명 있었다.
 나에겐 지금 중요한 건 공부가 아니라 우리 반 프리챌 커뮤니티에 답글을 다는 건데, 내가 좋아하는 그 아이가 다른 여자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지금 나는 학원을 갈 기분이 아닌데, 수업을 들을 가치가 없는 선생님 수업에 떠드는 건 나의 정당한 거부의사일 뿐인데 왜 엄마는, 선생님은, 아빠는 그것도 이해를 못해주나. 도대체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어. 이해가 안돼.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 투성이이던 시절. 내가 생각한 나만의 기준은 모두 설익었다 철없다 인정조차 받지 못하던 그 때. 열여덟, 우리는 모두 똑같은 것을 겪고 있었나보다. 미정이도 태훈이도 나도.



 영화를 보는 내내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미정이, 태훈이의 그 심정 뿐 아니라 그 아이들의 부모님, 주변 어른들도 모두 이해가 가가기 시작한 내 모습이었다. 이렇게 사람은 무언가 이해를 하게 되면서 어른이 되는 것이구나. '그래 그럴 수 있지, 원래 세상은 다 그런거야, 어른들 말씀 틀린 거 없더라' 자꾸만 세상을 이해하고 수긍하고 타협하면서 우리는 어른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특히 미정이 아버지의 행동은 정말 또라이 같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이해가 갔다. 아니,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을 떼어놓으려는 부모님들도 이해가 갔다. 온전히 태훈이의 편일 수만 없는 내 자신을 보며 난 마음만은 아직 10대라고 생각했는데 그새 세상이 날 이렇게 늙어버리게 했구나 새삼 한탄스러웠다.


 영화의 결정적 매력은 빈 구석, 흔히 말하는 '여백'에 있었다. 로맨틱 코미디에 나올 법한 열마디의 달콤한 대사보다 태훈이의 "내가 잘할께"가 더 애달팠고, 멜로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백가지 설정보다 태훈이의 "나 앞으로 계속 만나줄꺼야?"가 더 와닿았다. 특히 바닷가 여행 회상씬들을 하나같이 정말 예뻐서 마음이 저릿저릿 했는데 그건 화면이 이쁘고 대사가 이쁜 걸 떠나서 우리가 애틋했던 추억을 떠올릴 때 딱 그정도로 미화되어 있어서 그래서 더 예뻤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리고, 잃을 것도 너무 많아져버린 지금의 난 가끔 사춘기가 그립다. 아무것도 모르기에, 그리고 이해할 수 없기에 오로지 나의 감정과 열망에 충실해 앞으로 돌진할 수 있었던 그 시절. 지금의 난 그런 힘은 잃은 채 사춘기 시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세상 그 자체가 되어가고 있는 듯 하다. 세상은 원래 이래. 네가 받아들이기 힘든 그런 거 사실은 별거 아니란다. 덜익어 떫은 모습 자체로 돌진해나가던 태훈이를 보며 계속 속으로 타이르고 있던 나는 아무래도 너무 늙어버린 것 같다. 간섭도 구속도 없어서 내 마음대로 모든 걸 할 수 있을 줄 알았던 어른이 되었지만 정작 어른이 되어보니 스스로를 가둬놓고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게 내가 나를 간섭하고 구속하게 된 것이다.



 참, 그나저나 영어 제목은 Eighteen이던데 왠지 한국어 제목도 <회오리바람>대신 (회오리 바람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열여덟이라고 했으면 18로 읽었을 때 욕도 되면서 이중적으로 의미를 전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십팔 열여덟> 뭔가 욕하는 것 같으면서도 18살의 그 시절을 상징화할 수 있는 제목처럼 보이지 않나? ㅋㅋ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