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우시절]; 말이 필요없는 순간 보고쓰기



 호우시절의 감동에 뭉클한 마음을 추스리고 있는데, 사람들이 나오면서 '정우성 영어가 손발이 오그라든다'고 말한다. 영어가 모국어인 원어민들이야 외국인이 영어를 떠듬떠듬 서투르게 하면 귀여워보이겠지만 같이 영어를 못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같은 처지의 영어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괜히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손발이 오글오글해지긴 한다. 나 또한 그 기분을 드라마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의 김래원을 보며 느껴봤었는데, 김래원을 향한 나의 식을 줄 모르던 팬심이 김래원 영어대사에 사그라들었을 정도로 민망함이 심각하긴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다른 사람들이 느꼈다는 그 정우성 영어의 오글오글함을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전혀 느끼지 못했다는거다. 왜지? 나도 상당히 영화를 집중해서 봤는데 말이지. 정우성이 영어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이 영화를 보면서 나에게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었던 것이다. 아니, 원어민도 아니고 미국에서 잠깐 유학했다는데 그럼 유창하게 영어를 하는게 더 이상하지! [비포 선라이즈]를 보면서 줄리 델피의 프랑스식 영어에 전혀 신경이 쓰이지 않았던 것처럼 이 영화도 마찬가지 였다. 
 
 왜냐하면 호우시절은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못하는 남녀의 모습을 통해서 사랑을 할 때 우리가 느끼는 '말이 필요없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말로 전해지는 게 아니다. 눈빛과 목소리, 어조, 몸짓이 어우러지는 어떤 순간으로 전해지는 거다. 호우시절이 영어가 아니면 소통할 길이 없는 남녀에 카메라를 집중한 이유는 그걸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말이 잘통하지 않는 그들의 말이 필요없는 순간을. 
 
 생각해보면 사랑은 '사랑해'라는 말로 전해지지 않는다. '사랑해'라는 말 없이도 우리는 충분히 상대방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오히려 사랑이 전해지는 그 생생한 순간이 말로 표현이 되면서부터 오염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멜로영화는 너무 '말'에 기대어오지는 않았었나. 말이 필요없는 순간은 그저 두 남녀의 사랑이 고조되는 한 장면으로만 보여주고 그 이외는 현학적이거나 닭살스러운 대사들로 채우지는 않았었나. 하지만 허진호 감독의 '호우시절'은 수많은 멜로들이 실패했던 사랑의 '말이 필요없는 순간'을 포착해내는데 성공한다. 서로의 언어가 다르고 처한 환경이, 과거가 다른 남녀를 보여주면서.

 사실 줄거리 자체는 신선하지도 새롭지도 않다. 정우성의 서툰 영어에 대사까지 얼마 없다. 줄거리도 뻔하다고 트집을 잡고 싶다면야 그럴꺼리가 많은 영화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정우성의 서툰 영어보다도 정우성의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눈빛이 더 와닿았다. 고원원의 신파에 가까운 과거도, 그 과거를 사랑으로 극복할 가능성을 남겨두었다는 점이 좋았다. 무엇보다 단 며칠 사이에 미묘하게 발전되어가는 둘의 감정을 러닝타임동안 숨가쁘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따라잡을 수 있어서도 좋았다. 

 정우성도 이제  중장비회사에 다니는 노총각(?)을 연기하기에 어색하지 않게 느껴졌고, 고원원은 이 영화를 통해 처음보는데 때묻지 않은 순수한 매력이 <색,계>에서 탕웨이를 발견했을 때만큼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두산 인프라코어는 대문짝만하게 계속 나오니 인프라코어 측에서야 만족할테고, 무엇보다 청두 관광청이 이 영화에 적극 후원한 것이라면 정말 탁월한 선택이다.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특히 그 대나무 숲이랑 두보초당!

 영화 보는 내내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의 '말이 필요없는 순간'을 얼른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어라는 도식화된 틀에 갇히지 않은 날 것으로써의 감정을 교류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이야말로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기에 사람들은 그리도 사랑에 목말라하나보다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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