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영화 셋; [시간여행자의 아내], [2012], [솔로이스트] 보고쓰기



 될 수 있으면 영화 하나에 포스트 하나씩 할애해서 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도저히 포스트 하나를 채우기에는 그만한 감흥도 감동도 없는 영화들도 있다. 할 수 없다. 묶어서 간략한 감상을 남기는 수 밖에.


[시간여행자의 아내]

  
    내 머리 속에는 나만의 대략적인 영화 분류체계가 있는데, [시간여행자의 아내]는 [노트북]과 [이프온리]와 한 카테고리 안에 끼워넣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카테고리의 이름은 '헐리우드판 멜로'인데 '사랑영화'라는 큰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는 세부 카테고리라 할 수 있다. 대체로 슬프지만 아름다운 결말이 있고, 남녀 간의 사랑을 긴 템포로 그려낸다. 눈물과 감동은 있지만 그닥 깊이는 없는 그런 멜로물들이 이 안에 속한다 하겠다. 
    시간을 여행하는 남자와 그를 기다리는 여자는 사실상 양념에 불과하다. 이 영화의 포인트는 장애를 가진 한 남자와 그를 사랑하는 지고지순한 여성. 그리고 이제 막 행복해지려는 찰나에 다가오는 남자의 죽음, 그로 인한 슬픔 정도가 되겠다.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남자가 시간여행만 하면 벌거벗고 있다는 설정에 경악해서(멜로물에 이런 분위기 없는 설정이라니!) 별로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기대치가 낮아서였는지 영화 자체는 꽤 재미있었다.




[2012]

    광고회사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이야기 하나. 이거 저거 제품의 특장점을 모조리 광고에 때려넣고 싶어하는 광고주를 향해 프리젠터가 오렌지(혹은 그냥 공) 여러개를 한꺼번에 던지며 말했단다. 소비자도 같습니다. 한번에 하나만 받을 수 있죠. 이 영화 감독한테 내가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비슷하다. 한번에 하나씩만 합시다! 헐리우드판 재난영화들은 모아놓고 보면 줄거리는 거의 다 똑같다. 지구에 재난이 닥칠 것을 예상한 최초의 과학자 (불쌍하게도 그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데...) 그리고 소수의 기득권층만 살 수 있게 계획을 짜고 앉아있는 정부 우두머리들, 용기를 발휘하는 어느 서민 가족, 그 안에 싹트는 사랑 기타 등등. 각각의 재난영화를 구분하는 기준은 '어떤 재난'을 다루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지진이냐 화산폭발이냐 쓰나미냐 뭐 하다못해 태풍이냐. 근데 이 영화 감독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나머지 재난영화 하나 안에 할 수 있는 재난이라는 재난은 다 집어넣었다. (앞으로 나올 재난영화들 어떡하라고..) 
    게다가 주인공 가족은 지진도, 화산폭발도, 쓰나미도 모두 아슬아슬 피해가며 살아남는다. 이쯤되니 어느 순간부터 주인공 가족의 생사가 별로 궁금해지지 않는다. 아슬아슬한 것도 한두번이어야지 전혀 가족들에게 몰입이 되지 않고 순수하게 관객 대 영화 속 주인공의 입장에서 그들을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막판의 그 민폐라니.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경비행기 운전만 죽어라 하다가 진짜 죽어버린 남자조연도 참 억울하다. 
    영화를 다보고 나오면서 머리 속에 남아 있었던 것은, 지구가 멸망한다고 하면 나는 그냥 깔끔하게 죽어야지. 하는 생각 뿐이었다. 저렇게 해서까지 (지진과 화산폭발과 쓰나미와 기타 등등을 모두 이겨내면서까지) 살아남고 싶지 않아. 가족들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해 고마워" 이 말 남기고 깔끔하게 죽음을 받아들여야지. 이런 생각이 더 확고해졌다. (2012년이면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
 화려한 CG의 향연을 감상하고 싶다면 [2012]만한 영화도 없겠지만, 아무리 화려한 그릇에도 안에 내용물이 어떤 것이 들었느냐가 중요한 법이다. 그릇만 실컷 감상하고 배는 고픈 채로 식당문을 나선 그 정도 느낌의 영화였다.



[솔로이스트]

    영화를 선택할 때 내가 중점을 두고 고르는 것은 감독, 예고편, 주연배우 정도가 되겠다. (가끔 어느 영화제 상영작인지 상을 받았는지도 고려요소가 되기도 한다.) [솔로이스트]는 분명 내가 중점을 두는 세가지 요소를 모두 충족시키는 그런 영화였다. [어톤먼트]와 [오만과 편견]을 만든 조 라이트 감독에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레이]의 제이미 폭스라니! 게다가 햇살을 한가득 받으며 첼로를 연주하는 예고편 속 제이미 폭스의 모습은 어찌나 감동적인지! 꼭 봐야할 영화 목록에 개봉일과 함께 적어두고 잔뜩 기대를 품고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기대한 영화인데!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일주일 간의 피로가 모두 나를 엄습하는 느낌이었다(이 영화를 금요일 저녁에 보았다). 그리고 영화를 다보고나서야 내가 유독 피곤했던 게 아니라 영화가 유난히 지루했던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기에 더해서 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클라이막스를 운운하고 클라이막스에 따른 '카타르시스'를 이야기 했는지도 절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굉장히 산만했다.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는 나다니엘의 정신세계만큼이나 저 장면이 여기서 '왜' 들어가는지 저 대사는 뭘 의미하는지 한 방향으로 응집되는 느낌이 전혀 없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는 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려고 했다는 건 알겠지만 그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기승전결도 없고 맥아리도 없었다. 연기파 두 배우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원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독이 너무 힘을 뺀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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